<심연들>은 투명하니까, 김윤수

        (이미지 출처: cahierdeseoul)

책상 위에 놓인 가위에 대해 생각해본다. 가위의 형태와 가위의 목적에 대해서.
그리고 그것에 대해 적거나 그려본다. 이제 가위는 흰 종이 위에 놓여있다.
그러나 종이 위에 놓인 그것은 가위인가. 어떤 점이 가위인가.
나는 분명이 가위의 실체를 종위 위에 구현해 놓았는데, 어쩐지 나는 자꾸 가위의 표면에서 미끄러지는
느낌이다. 나는 지금 검은 동굴같은 가위의 검은 그림자를 막연히 보고 있는 것 같다.
가위들의 이데아는 어떤 모습인가. 그것들은 어디에 있는가.
 
예술은 재현의 욕구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실재에 닿지 못하는 그 실패물들이 예술에 다름아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김윤수의 작품 또한 그가 매번 재현의 실패에 부딪히게 되는 그 지점. 그 불가능성의
경계에 놓여있다. 그러나 그는 이 불가능성을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의 작품들은 그 불가능성을
의도적으로 드러낸다.대상, 그러니까 가장 구체적이고 단단한 것들의 형태를 무화시키는 방법으로 말이다. 



그는 가위나 선풍기와 같은 사물의 표면에 얇은 골판지 대고 천천히 감는다. 감아지면서 가위는 사라진다. 
그러나 점점 가위가 사라질수록 만들어지는 것이 있다. 그 추상적인 형태는 사막에 부는 바람같기도 하고, 섬같기도 하다. 그래서 그것은 그저 '알 수 없음'에 대한 하나의 기표가 된다.
조용한 침묵, 즉 말할 수 없고 드러낼 수 없음을 안고있는 거대한 무덤인 것이다.
 
대상을 지우기 위해 그 형태를 수평으로 '감는' 축적 행위는 수직으로 '쌓기' 작업으로도 이어진다.
사람들의 발 모양을 본딴 울트라마린색의 비닐 PVC를 쌓아올린 작품들이 그러하다. 서로 다른 발이 미세하게 확대되면서 쌓일수록 발의 형태는 사라지고 하나의 결로 이루어진 푸른 바람이 형성된다.

고정된 발의 형태가 가벼운 바람이 되는 듯한 이 역설에 이르러,
쌓을 수록 그리고 감을수록 고정되고 단단하고 단일화된 대상들은 사라진다.
그리고 이제 보이지 않고 투명해서 가능해지는 "모든 것이 온다"


             김윤수 작품집 『모든 것이 온다』 (이미지 출처: 닻프레스)                           


* 김윤수 작가의 작품은 실제로 본적이 없다. 슬프게도. 단순히 그녀의 작품집에 있는 몇 작품에 반해
  그녀의 인터뷰와 개인 블로그를 열심히 서칭했고 그래서 이미지만을 접할 뿐이었다.
  <심연들>이란 작품명처럼 분명 깊은 어딘가에 있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그녀의 사유방식에 완전히 매료되었던 것 같다. 꼭 언젠가 저 바람들을 직접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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