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을, <Twilight>에서 <Galaxy>로 



여기 2층의 작은 회색 건물이 놓여 있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 좁은 복도를 통과하면 
작가의 내밀하고도 개인적인 공간이 나타난다. 사유의 흔적들이 피규어와 드로잉을 중심으로
곳곳에 놓여있는 이 작은 공간은 작가 김을의 작업실이다. 
작가는 이 설치 공간을 <Twilight Zone Studio>라고 명했다.  
직역하자면, 낮과 밤의 경계에 있는 곳. 그래서 현실과 현실 밖이 교묘하게 중첩되는 곳.
그래서 이 물리적인 공간은 어딘가 임시적이고 불분명하다.
그러나 오히려 낮과 밤의 중간적인 이 상태는 역으로 우리가 이 공간에서 어딘가로 이동중임을 말해준다.
우리는 그의 작업실, 이 현실적 공간에서 지금 어디로 이동하는가.


 

<Twilight Zone Studio> 안에는 큰 창이 하나 있는데,
그 창은 밖으로 연결 된다. 창 밖을 바라보면 그곳엔 지금 완전한 밤이 와있다. 
현실 너머에 있는 작가의 검은 우주, <Galaxy>가 놓여 있는 것이다.  
거대한 고래처럼 천천히 유영하는 듯한 이 우주는 작가의 드로잉이 떠오르는 내적 세계이다.
현실을 벗어난 작가의 상상력이 나타나고 사라지는 공간.
그러니까 이 작품은 상상력과 감각은 어디서 어떻게 오는가에 대한 예술의 끊임없는 질문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창을 경계로 마주하고 있는 <Twilight Zone>과 <Galaxy>
우리는 지금 두 공간, 즉 두 작품 사이에서 여기와 저기를 횡단하고 가로지르는 김을을 보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심연들>은 투명하니까, 김윤수

        (이미지 출처: cahierdeseoul)

책상 위에 놓인 가위에 대해 생각해본다. 가위의 형태와 가위의 목적에 대해서.
그리고 그것에 대해 적거나 그려본다. 이제 가위는 흰 종이 위에 놓여있다.
그러나 종이 위에 놓인 그것은 가위인가. 어떤 점이 가위인가.
나는 분명이 가위의 실체를 종위 위에 구현해 놓았는데, 어쩐지 나는 자꾸 가위의 표면에서 미끄러지는
느낌이다. 나는 지금 검은 동굴같은 가위의 검은 그림자를 막연히 보고 있는 것 같다.
가위들의 이데아는 어떤 모습인가. 그것들은 어디에 있는가.
 
예술은 재현의 욕구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실재에 닿지 못하는 그 실패물들이 예술에 다름아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김윤수의 작품 또한 그가 매번 재현의 실패에 부딪히게 되는 그 지점. 그 불가능성의
경계에 놓여있다. 그러나 그는 이 불가능성을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의 작품들은 그 불가능성을
의도적으로 드러낸다.대상, 그러니까 가장 구체적이고 단단한 것들의 형태를 무화시키는 방법으로 말이다. 



그는 가위나 선풍기와 같은 사물의 표면에 얇은 골판지 대고 천천히 감는다. 감아지면서 가위는 사라진다. 
그러나 점점 가위가 사라질수록 만들어지는 것이 있다. 그 추상적인 형태는 사막에 부는 바람같기도 하고, 섬같기도 하다. 그래서 그것은 그저 '알 수 없음'에 대한 하나의 기표가 된다.
조용한 침묵, 즉 말할 수 없고 드러낼 수 없음을 안고있는 거대한 무덤인 것이다.
 
대상을 지우기 위해 그 형태를 수평으로 '감는' 축적 행위는 수직으로 '쌓기' 작업으로도 이어진다.
사람들의 발 모양을 본딴 울트라마린색의 비닐 PVC를 쌓아올린 작품들이 그러하다. 서로 다른 발이 미세하게 확대되면서 쌓일수록 발의 형태는 사라지고 하나의 결로 이루어진 푸른 바람이 형성된다.

고정된 발의 형태가 가벼운 바람이 되는 듯한 이 역설에 이르러,
쌓을 수록 그리고 감을수록 고정되고 단단하고 단일화된 대상들은 사라진다.
그리고 이제 보이지 않고 투명해서 가능해지는 "모든 것이 온다"


             김윤수 작품집 『모든 것이 온다』 (이미지 출처: 닻프레스)                           


* 김윤수 작가의 작품은 실제로 본적이 없다. 슬프게도. 단순히 그녀의 작품집에 있는 몇 작품에 반해
  그녀의 인터뷰와 개인 블로그를 열심히 서칭했고 그래서 이미지만을 접할 뿐이었다.
  <심연들>이란 작품명처럼 분명 깊은 어딘가에 있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그녀의 사유방식에 완전히 매료되었던 것 같다. 꼭 언젠가 저 바람들을 직접 보고싶다.



사진집, 『Night Garden』, Amanda Marchand



am 3:20 
 
아만다 마찬드는 셔터 없이 밤의 정원을 걷는다. 그리고 그 어둠 속에서 그곳의 식물들을 찍는다.
빛도 없이 흐릿한 이미지. 조용하게 흔들리는 것의 울림들. 그래서 어쩐지 가만히 열리는 청각의 감각들.
그러니까 이것은 어쩌면 밤의 정원을 담은 사진집이지만 동시에 내밀하게 들리는 어떤 대화집인 것이다.

"(…) with a blue moon, a gibbous moon, with no moon, sometimes, and I'm blind. At least, I'm photographing blind"
 


카메라의 셔터는 보통 낮에 열린다. 빛이 완벽하게 들어오는 시점. 그래서 시각적으로 가장 선명해지는 시각.
그러나 지금 그녀의 사진 속 배경은 온통 어둠 photographing blind.
코스모스와 릴리, 양치식물들, 노란 꽃들, 자작나무 아래의 식물들은 빛 없는 밤에 초점없이 흔들린다.

그러나 잘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귀가 열린다. 그래서 조용하게 남아있는 사진 속 잔상들 echo의 파동은 여기서
시각이 아니라 청각적으로 감각된다. 눈으로 보는 사진 속에서 에코처럼 울리는 대화들 말이다.
그는 지금 한낮에 빛 아래 서 있던 정원의 식물들이 하나씩 들어가는 어둠 속에서
그들의 대화를 기록하는 것이다.




"while you were sleeping" 
 
이 정원은 사실 그의 어머니가 오랜 시간을 보낸 정원이기도 하다.
'bloomish'라는 애칭을 가지고 있으며, 잠잘 때는 그녀가 굿나잇 인사를 건네는 곳.
그는 난소암 투병 중인 어머니가 잠든 사이 조용히 그녀의 정원에 들어가 그 밤의 대화를 사진에 담아낸다.
어쩌면 그는 빛의 시간을 지나 이제는 어둠 안에서 쉬고있는 정원의 식물들을 보면서
앞으로 다가올 어머니의 긴 잠을 지켜주고 싶었던 것일지도.
사진집 속에 그 밤의 정원 속 대화들은 앞으로 그와 어머니가 완전한 어둠속에서 대화하는 방식에 대한 은유법인 것이다.

"When you're not here, this is how we will talk"  
 

 
* 인용 및 참조: 「작가의 말」, 『Night Garden』, 닻프레스, 2015, Amanda March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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